[신문보도]10/11. 한겨례 [ESC] 사랑의 블랙홀, 그것이 알고 싶다
  글쓴이 : 상담소     날짜 : 17-10-12 13:26     조회 : 386     트랙백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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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ESC] 사랑의 블랙홀, 그것이 알고 싶다


[너 어디까지 해봤어?]
특별한 이유 없이 헤어지는 연인 권태기가 주범
 부부도 마찬가지 이혼 이유 알고 보면
 대화·경청·표현·공유 등이 해결책
 행복한 커플 러브 맵 업데이트 자주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누구나 영원불변한 사랑을 꿈꾼다. 나와 그(녀)는 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하늘이 맺어준 운명 같은 사랑이라고. 누군가를 보고 첫눈에 반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철석같이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 첫눈에 반해 ‘콩깍지’가 씌웠던 남녀도 시간이 흐르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무뎌진다. 자극 없는 말과 행동에 외롭고 점점 지쳐간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관계가 오래되면 피곤함과 지루함을 느끼듯, 사랑에도 권태가 온다.



 
‘인연’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친구들 모임에 등장한 낯선 남자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호남형인데다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모임 내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첫눈에 반해 버렸다. ‘설마 나에게…’ 돌아서려는 찰나, 그가 나타났다. “활짝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 최윤주(가명·32·영어강사)씨는 지금도 7년 전 그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둘은 그렇게 연인이 됐고, 3년여간 불같은 사랑을 나눴다. 비록 지금 그녀 곁엔 그가 없지만.
“공통분모가 너무 많았다. 뭐, 다들 그렇게 믿고 연애를 시작했겠지만. 우리는 식성, 취미, 생활습관, 섹스는 물론이고 심지어 양가 부모님의 고향과 결혼기념일까지 같았으니까.” 하지만 둘은 결국 파국을 맞았다. 헤어짐의 이유? 딱히 없다. 최씨는 “4년이 지난 지금도 헤어진 이유를 잘 모르겠다. 크게 싸운 일도 없고, 서로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거나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연애 초기 가슴 떨리던 감정이 식었고, 둘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갈망했다. 연락이 점점 뜸해졌고, 그 기간이 길어졌을 뿐인데,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영원한 이별을 맞을 줄 몰랐다.”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씨는 “이별을 후회한다”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무기력하게 그를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권태기를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했다. 익숙함과 지겨움에 속아 너무 소중한 걸 잃었다. 5~10년 장기 연애 뒤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더욱 그가 그립다.”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가 아니더라도 연인 사이의 권태기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 권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진 경험이 있는 이들이 4명 중 3명에 이른다. 결혼정보회사 가연(2015년 기준)이 미혼남녀 673명(남 329명, 여 3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인 사이의 권태기’ 조사 결과를 보면, 75.6%에 달하는 이들이 ‘그렇다’고 답해 권태기가 이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인에게 권태기를 느꼈거나, 상대가 변했다고 느껴진 기간’은 ‘1년 이내’(40.1%)가 가장 많았다. 뒤이어 ‘6개월 이내’(26.9%), ‘2년 이내’(17.1%), ‘2년 이상’(10.2%), ‘3개월 이내’(5.7%) 차례였다.
권태기는 어찌 보면 연애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니라는 얘기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겸 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는 “삶의 변화나 자극이 없으면 일상에서 권태를 느끼듯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권태기를 느낀다”고 설명한다.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은 뇌 과학적으로 입증된 결과다. 많은 이들이 최씨처럼 사랑에 익숙해질 때쯤 ‘이별’을 택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착각에 가깝다. 사랑을 의심하고 상대를 미워하며 원망하지만, 사랑의 정도가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방식이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단언한다. “연애 초기엔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엔도르핀이 분비돼 ‘열정’이 흘러넘치지만 이후 줄어든다. 옥시토신 분비량이 늘면서 상호 이해, 공감 등 우정 같은 사랑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때 권태기를 겪지만, 실은 친밀감과 연결감, 이해와 존중받는 태도로 인해 더 깊은 연결감을 갖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사랑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다.”
연애 10년, 결혼 12년차인 홍성민(40)·왕미라(41) 부부는 권태기를 현명하게 극복한 예다. 연애 시절 서너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이미 얻은 결론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터득한 덕분이다. 왕씨는 “남편도 그랬겠지만, 연애 2년 때쯤 남편이 곁에 오는 것도, 숨 쉬는 것도, 나를 쳐다보는 눈빛조차 끔찍하게 싫어 짜증과 다툼이 늘었던 때가 있었다. 석 달쯤 헤어짐이 있은 뒤 남편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때부터는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고, 지금도 애정 표현이나 심지어 섹스를 할 때도 남편보다 더 적극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왕씨는 지금 자신한다. 결혼 이후엔 권태기가 없었다고. 남편과의 전화통화 횟수가 줄어도, 스킨십이 줄어들어도 왕씨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가 노력하는 만큼 남편도 권태기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왕씨는 “권태감을 숨기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모적인 자존심 싸움을 지양하고, 남편의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솔직한 감정으로 대화와 스킨십을 자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부 사이에도 권태기는 온다. 결혼한 지 3~5년이 되면 무미건조한 삶에 대해 회의감도 들고, 평온한 일상 속에서 서로 외면하고 말도 줄인다. 말이 곱게 나오지 않고, 대화를 할수록 목소리가 커지며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육체적인 감각이나 느낌에도 익숙해져 상대방을 봐도 흥분하지 않고 섹스에 무덤덤해진다. 특히 임신과 출산을 겪거나 육아에 찌든 여성은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일이 잦아진다. 부부관계가 어색해지고 악화되면서 심각한 권태기를 맞게 돼 극단적인 경우 파국과 마주한다.
양미선(43·회사원)씨는 3년 전 11년의 결혼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결혼 전엔 효자인 남편의 모습에 호감을 느꼈지만, 결혼 이후 가족보다 시댁 식구들을 챙기는 모습이 단점으로 보였다”며 “처음엔 참았다. 대화를 시작하니 사사건건 다툼으로 이어졌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어느 순간 대화를 시도하지도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혼 전까지 5년여간 권태기였다. 애들도 있는데, 더는 이렇게 고통스럽게 서로의 감정을 갉아먹으며 원수가 될 수 없어 이별을 택했다”고 말했다.
연인이든 부부 사이든 서로의 감정을 숨기고 오래 참다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 역시 갈등을 쌓아놓는 것은 권태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보통예금처럼 수시로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데 정기예금처럼 갈등을 쌓아놓으면 안 된다. 갈등이 생기면 그때그때 얘기를 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그 전제엔 상대가 본인에게 가장 큰 에너지를 주는 존재라는 점을 각인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소장은 첫째 일단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기, 둘째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주기, 셋째 사랑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기, 넷째 일상과 생활의 많은 것을 공유하기 등을 제안했다.
김 소장의 조언처럼,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음으로써 권태기를 수월하게 넘긴 부부도 있다. 정윤경(38·주부)씨는 “둘째 아들을 얻고 난 뒤 남편과의 대화도, 잠자리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한집에 살지만 서로 남남 같았다. 어느 날 잠자리를 시도했는데, 너무 어색해서 실패했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오랜 시간 대화를 했고, 서로 힘들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대화와 잠자리의 시간을 갖자고 의견일치를 봤다. 그다음부터 모든 근심이 다 해결됐다”고 한다.



 
연인과 부부 사이 대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각자의 공간과 세계를 갖게끔 하는 배려다. 맞벌이 등 서로 바쁜 사람들은 취미와 일상을 공유할수록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문요한 대표는 “행복하게 오래 지속되는 커플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어떤 취미와 가치관, 상처를 갖고 있는지 알아가며 ‘러브 맵’을 정확하게 업데이트해간다. 하지만 불행한 커플들은 잘못된 정보가 업데이트돼 결과가 좋지 않다”며 “여행, 집안 재배치, 화분 키우기나 반려동물 입양 등을 통해 새로운 환경적인 자극을 통해 ‘러브 맵’을 수정해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